대청제국은 다른 북방민족과는 다르게 건국 초기부터 만주문자로 기록을 남겼다. 만문 기록인『滿文老檔(만문노당)』은 일찍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일본에서는『 만문노당』을 로마자로 轉寫(전사)하고 譯註(역주)를 달아 간행하여, 심도있는 학문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 『 만문노당』은 1차 자료가 아니다. ‘개국 당시의 사정을 확인할 수 있는 滿文檔案(만문당안)이 오래되고 낡아서 훼손되기 쉽고, 舊滿文(구만문)이라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서 건륭년간에 重抄(중초)한 것이『만문노당』이다.
『舊滿洲檔(구만주당)』(근래에 새롭게 영인하여『滿文原檔(만문원당)』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간되었다.)은 바로『만문노당』의 저본이 된 1차 자료이며, 대체적으로 대청제국의 성장과정과 밀접한 시기에 기록된 원본 자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70년대 후반에 이미 대청제국 초기에 대한 연구는 『만문노당』에서『구만주당』으로 분석 대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아직도 『구만주당』은 연구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구만주당』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의 문제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선은『구만주당』은 대부분 구만문으로 기록되어 있어 읽어내기가 어렵고, 쓰인 표기법도 통일되지 않았고, 문자로 표기할 滿語(만어)의 어휘도 통일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뿐만아니라『구만주당』의 文件(문건)이 시간순서대로 배열되지 있지 않고, 중복된 부분도 많고, 문장이나 낱말을 削除(삭제), 혹은 添加(첨가)하는 등 變改(변개)한 부분이 많아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가 바로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전하는 기본 자료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본서의 1장은『구만주당』을 소개하고 그 활용방안을 제안하였다.
이상의 조건에서『구만주당』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滿文老檔硏究會(만문노당연구회)에서 역주하고 東洋文庫(동양문고)에서 출간한『만문노당』의 태조조 부분을, 臺北(대북)의 國立故宮博物院(국립고궁박물원)에서 간행한『구만주당』과 대조한 대조표를 만들었다. 이 대조표는『만문노당』의 쪽수와 行數(행수)를『구만주당』과 대조한 것으로, 2장 ‘『滿文老』(만문노당)』과『舊滿洲檔(구만주당)』對照表(대조표)’로 구성하였다.
하지만 중초의 과정에서 삭제된 기사는『만문노당』에 수록되지 않아,『만문노당』을 기본으로 한 대조표에서는 이들 기사를『구만주당』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구만주당』의 본래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도록『구만주당』의 각각의 지면을 『만문노당』과 확인할 수 있는 대조표를 만들어, 새로 3장 ‘『舊滿洲檔(구만주당)』과『滿文老檔(만문노당)』對照表(대조표)’로 구성하였다.
이 대조표를 활용하여 자료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는『구만주당』(『만문원당』)이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