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처용설화를 둘러싼 외설 논란을 정리한 것이다.
울산광역시 처용문화제 관계자들은 처용설화에서 관용과 화합의 정신을 도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처용설화는 처용이 기술한 사실 그대로 이해되어야 하며, 불륜과 간통을 주제로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두 관점 사이에서 치열한 논전이 벌어졌으니, 이것이 바로 울산에서의 처용논쟁이다.
처용설화의 초기연구자들은 처용의 태도를 일반적으로 관용이라고 해석하였지만, 저자는 그러한 해석은 잘못된 해석방법론에 기인한다고 비판한다. 초기연구가들이 처용의 태도를 관용으로 해석한 것은 일연스님의 주석이나 고려 처용가에 대한 무속적, 민속학적 연구경향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고려 처용가는 일반적으로 벽사진경을 주제로 하는 무가(巫歌)로 분류되고 있으며, 따라서 그러한 관점에서 신라 처용가를 봄으로써 역신퇴출 부분을 강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처럼 전승적 관점에서 처용설화를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 오히려 처용사건 당시의 역사문화적 정황들을 참조하여 해석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처용이 부인과 역신의 통간 장면을 보고서 물러서는 태도에 대하여 김열규 교수는 체념으로, 이기문 교수는 진노로, 그리고 박인희 교수는 경고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들의 해석에 의하면 처용의 태도를 관용으로 간주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그런데 처용의 태도를 관용으로 해석할 경우에는 처용부인과 역신의 간통 사실을 전제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울산시의 처용문화제 관계자들은 외설 시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 간통 사실을 부정하였으며, 그 때문에 간통과 불륜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관용을 강조해야 하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처용에 관한 기존 연구 성과들, 특히 김기흥 교수의 처용 효공왕설, 박인희 교수의 처용 문원(신덕왕의 친부)설, 조수학 교수의 처용 경순왕설에 주목하면서, 처용사건의 주역들이 왕실과 관련된 사람들이라고 보았으며, 삼국유사의 전거를 활용하여 헌강왕 때 시중 벼슬을 지냈던 예겸이 신덕왕의 의부이고 문원이 친부라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 주장은 2004년에 박인희 교수에 의하여 제기된 것이다.
저자는 신라말기의 박씨왕조의 성립 과정에서 처용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처용과 역신의 관계를 문원과 예겸으로 등치시켰던 박인희 교수의 학설에다가 신라왕실의 성풍속사를 적용하여 처용사건을 신라왕실의 섹스 스캔들로 규정한다.
이와 같은 처용설화 해석은 박씨문중의 반발을 불러 왔다. 예겸-역신설 때문이다. 대다수의 박씨문중에서는 예겸을 중시조인 경명왕의 조부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예겸의 성씨가 김씨라는 주장이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으며, 그가 신덕왕의 친부(親父)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책은 문학적 민속학적 지평에서만 논의되었던 처용설화를 철학자가 처음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기존의 처용 이해를 완전히 뒤집은 해석이라는 점에서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무속적, 민속학적 해석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전복적 해석학과 탈신화화 방법론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김경수, 이수봉 교수의 처용설화 해석에 대해서도 예리한 비판을 시도하고 있다. |